남조(南朝)의 진(陳)이라는 사람은 『정록』에 황제가 한때 융강 남쪽의 석성산에 살았으며 그곳에서 연금술을 하고 황제정을 시전했다고 기록했다. 이때부터 용강에는 제련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춘추시대의 검, 한나라의 석궁, 당나라의 동창, 송나라의 구리채굴, 청나라의 총신, 용강의 철물은 언제나 역사와 함께 변화합니다. 관련 사료에 따르면 당송시대 영강에는 철물제품을 가공하는 철물장인이 있었다고 한다. 원, 명, 청, 민국 시대에 융강에는 많은 철물 공예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숙련된 공예가들이었습니다. 청나라 광서가 쓴 『용강현기』에는 “저울 제조는 북송부터 시작됐다”고 기록되어 있고, 청나라 광서시대에 기록된 『용강현서』에는 “장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흙, 돌, 대나무, 나무, 금, 은, 구리, 철, 주석…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용강금은공예' , "용강 구리 공예"와 "용강 다림질 공예"는 저장성 무형 보호 프로젝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용강에서는 주석 조각을 흔히 '다' 또는 '다틴'이라고 부른다. 이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독특한 민속 공예품이다. 『용강군기』에 따르면 '주석제조'는 오대(五代)에 형성되었다. 주석 만들기가 대중화되고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면서 점차 중요한 민속공예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제품은 고풍스럽고 화려하며 주로 전통 지참금, 의례용 소품, 불교용품,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실용성과 장식적 가치가 높습니다. 용강에서는 쇠주전자, 찻주전자, 찻통 등을 사람들 사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용강(Yongkang) 풍습에 따르면 소녀가 결혼하면 가족이 종종 그녀에게 양철 도구 세트를 줍니다. 2008년에는 주석조각이 제2차 국가무형문화유산목록에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