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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처음으로 맡은 직책은 김정일의 유산에 따르면 중앙위원회였다. 지난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당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군에 대한 그의 중요성을 실무를 통해 입증해왔습니다. 행위. 2012년 새해 첫날, 김정은은 '사문정치'의 산실로 알려진 조선인민군 제105전차사단을 시찰한 이후 군의 시찰 횟수도 빼놓을 수 없었다. 김정은의 시찰활동이 대부분이다.

북한중앙TV가 방송한 다큐멘터리에는 김정은이 말을 타고, 탱크를 타고 길을 따라 포격을 가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이 젊은 지도자가 “시작된 유산을 이어받게 될 것”임을 더욱 반영한다.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혁명의 대업'. '제1군사정치' 계승과 더불어 경제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김정은의 주요 임무다. 수형자 사면, 평양 대형쇼핑몰 개장 등은 모두 김정은의 새로운 행보를 보여준다. .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돌 기념 열병식에서 240㎜ 방사능포를 개량한 '주체 100포'를 공개할 예정이다. 주체100포'가 실전에 투입됐다. 북한은 또 러시아로부터 300mm 포탄을 수입해 수년간 평양로 서해안에서 발사시험을 해왔다.

이번 열병식은 물론, 이러한 군사력의 물결은 지난 3월 7일 수도 평양 광장에 모여 대학생들까지 확산됐다. 이명박이 이끄는 남한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기꺼이 군대에 입대할 의향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일부 학생들은 위대한 사령관 김정은이 명령을 내리면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전체가 바람처럼 서울로 달려가 이명박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초부터 북한 내부의 투쟁 정신은 약해지지 않았다. 새해 초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제105전차사단을 시찰했다. 이번 시찰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취임한 후 첫 번째 시찰이었다. 시찰이 진행되는 동안 장병들은 계속 박수를 치며 일제히 김정은의 이름을 환호했고, 김정은도 이에 화답했다.

제105전차사단은 1950년대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1세대 지도자 김일성이 창설한 사단으로, 여단에서 여단으로 승격됐다. 부서. 1960년 8월 25일 북한의 2세 지도자가 된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105전차사단'을 시찰했다. 김정일은 부대 중 한 곳을 가장 많이 시찰했으며 이는 북한 지도자들이 선군노선 추구를 선언하는 상징적인 움직임이 되었다.

북한 국영 TV가 방송한 새 다큐멘터리에는 김정은이 말을 타는 영웅적인 모습과 함께 더욱 이례적인 것은 놀이공원을 방문해 승마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자유 낙하" 좌석 사진. 그가 탱크를 타고 도로를 따라 포격을 가하는 장면은 이 젊은 지도자가 “아버지 김정일께서 시작한 선군혁명의 위대한 위업을 이어받게 될 것”임을 더 잘 반영한다.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끄는 '선군정치', '선군혁명' 등의 주장 이면에는 실제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화는 과거 '선군'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정치'는 점차 변화되어 '군정치 선'이라는 혁명위업을 완성해 나갔다. 대신 소위 '당이 정부를 이끈다', '당이 군대를 이끈다'는 것이 김정은 정권이나 정치체제, 정치노선을 재편하는 데 활용된다.

김정은은 국정운영을 시작한 이후에도 일련의 조치들을 발표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9일부터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사면한다는 법령을 발표했다. 2월 1일. 내각 및 관계 당국은 석방된 이들의 업무와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 장병들이 건설 중인 평양민속공원, 영웅거리 정육점 등 건설 ​​현장도 시찰했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돼 올해 4월 15일 완공될 예정이다.

북-미 회담 이후 발행된 미국 타임지는 미국판, 유럽판, 남태평양판 등 모두 표지에서 김정은을 집중 조명했다. 서구 주류 언론이 젊은 지도자를 긍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을 만났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김정은의 성장 이력을 소개하며 평범한 소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농구를 좋아하고 슈워제네거를 동경한다.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큰 기대를 품고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강한 분석력을 보였다고 한다. 관찰하고 행동을 조직하며 17세 때부터 북한의 현재 상황과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왔다. 그러나 200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당시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후계자로 김정은이 지명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10년 9월,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진급하고 조선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된 후에야 후계자로서의 그의 정체성이 드러났다.

그해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처음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김정일의 후계자가 공식적으로 확정된 이 청년은 30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나라를 이끌 준비를 시작했다.

해설: 김정은이 집권한 후 국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성숙함을 보여줬는데, 그의 생활 습관과 취미도 한때 미국의 유명 뉴스 매거진 '타임스'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80년대 이후 지도자를 묘사하는 '김정은을 만나고 예측하다'라는 제목의 글이 쓰였다.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형 김정철과 달리 주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 형제는 성격과 외모가 매우 다릅니다. 김정철은 섬세하고 온화하며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어머니 고영희를 닮았고, 김정은은 겉보기에는 부드러운 아버지 김정일을 닮았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판단력이 강하며 남을 이끄는 것을 좋아하는 김정은은 1998년 가명을 사용하며 7학년에 입학했다. 북한 외교통제 하에 있던 어린 시절, 스위스 리버펠트 교외의 공립학교. 당시 김정은의 동창들에 따르면, 조던이 미국 NBA를 장악하고 있을 때였다. 김정은은 한때 시카고 불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농구."

김정은의 농구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 북한 농구의 발전에도 반영될 것이다. 북한은 한때 농구 선수 리밍순을 NBA 진출로 승격시켰다는 말이 있다. 그 배후에는 김정은도 요르단을 초대하고 싶었지만 김정일은 늘 동의하지 않았다. 2000년 김정은은 9학년이 된 뒤 '갑자기' 스위스를 떠나 북한으로 돌아갔다. 11살 때 찍은 김정은의 흑백사진이 유일하게 떠돌았다. 김정은 이전의 세계는 그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 두 달이 넘은 이후 그의 팀은 김정일 시대의 정치유공자와 군유공자 외에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북한의 당, 군, 정부에서 활동하는 청년층도 점차 김정은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30~40세의 노동당과 정부 간부들의 자녀로 '비컨그룹'으로 불린다.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군사위 부위원장을 지낸 뒤 점차 '봉대군'에서 젊은 장성, 간부들을 대거 승진시켜 중요한 직책을 맡게 했다. 잘 알려진 대표로는 오세현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차남으로, 한때 작전부서에 몸담았던 오세현 씨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봉사했던 노동당의 당원. 강석주 부총리의 장남인 강태성은 현재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총수사부에서 근무하며 외화벌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비콘팀'이 향후 김정은 집권 과정에서 '경호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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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집권 후 두 달 동안 그의 팀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조선로동당의 지도핵심에 들어와 김정은을 지지하는 인사들은 주로 김정일시대의 정치유공자와 군유공자들인 동시에 청년층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점차 정치 무대에 들어섰습니다. 친인척 및 고위간부

김정일의 생애 동안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김정일의 누나 김경희와 처남 장성택이었다. 2010년 9월 28일 열린 조선로동당 대회에서 김경희가 장군으로 추대되었고,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정무상을 맡았다. 북한 정치무대에서 핵심적 입장을 확립하고 있다.

김경희는 1946년 5월생으로 김정일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형제자매 중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좋다. 김정일은 “그 사람은 나의 유일한 혈족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나에게 자기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셨다.

“김정일이 집권한 후 다른 형제자매들을 대사로 해외에 파견하여 평양의 정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했으나 그와 함께 지낸 것은 누나 김경희뿐이었다. 김정일 사후 김경희는 장성택은 1946년 2월생이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그를 "금테 안경을 쓰고 검은 양복을 입고, 항상 머리에 스프레이를 바르세요. 일본의 'AERA' 잡지는 장성택의 이름이 북한에서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고 모두에게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젊었을 때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로 인정받았다. 김인은 김정일 생전에 시찰활동에 늘 동행하여 김정일을 크게 신뢰하고 두 형인 장성을 추대하였다. 우 장관과 장성길이 북한군 최고위 장성들에게 “장성택이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김정은에 대한 그의 영향력도 매우 중요하다.

개인 장군

김정일은 친척 외에도 어린 시절 친구인 우커리에와도 친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사망한 김일성 동지 우중차. 따라서 1931년생인 우커리는 어릴 때부터 김일성과 함께 살았고, 김정일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 그들은 형제였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조선인민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조선군 현대화를 주도했으나 당시 인민무력부장 우와 갈등을 빚었다. 이후 진우는 김정일의 비호 아래 복귀해 1989년 노동당 행동부장을 맡았다. 이후 20년 동안 그의 직위는 어떻게 조정되든 요원 훈련은 계속됐다. 우클라욜은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군 내에서 많은 기반을 갖고 있어 현재까지 영향력이 크다. 우클라욜은 일반적으로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정권의 중요한 조력자로 평가받는다.

현철해 장군. 현재 북한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인 그는 김정일의 시찰에 우커리에에 이어 두 번째로 김정일이 매우 신뢰하는 고위 장군이다. 1934년에 태어난 Xuan Zhehai는 만경대혁명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며, 항상 과묵하고 김씨 일가에 충실했기 때문에 한때 노동당 지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행동부 어떤 사람들은 노동당 행동부를 김정일의 '개인 경호원'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부서는 2000명의 간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많은 구성원이 12세 때부터 특별 훈련을 받고 '생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서의 공식 구성원이 되었을 뿐이다. 다른 북한 특수부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기들을 갖추고 있다. 이 부대는 김정일이 경호원을 데려오거나 통보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2012년 1월 24일 현철해는 김정은과 함께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김 차장도 함께했다. 용춘은 외부에서도 김정일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춘은 1936년생으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조선인민군 참모총장을 지낸 후 부군장이 됐다. 북한 최고 권위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북한군의 '매'라고 표현한 '캐릭터',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1998년), '제1차 연평해전'. '(1999년), '제2차 연평해전'(2002년),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2006년), 1차 핵실험(2006년) 등이 모두 참모총장 재임 기간에 이뤄졌다. 한국 소식통에 따르면 김용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는 마오안잉 사망 60주기인 2010년 11월 25일 김정일을 대신해 마오안잉 묘소에 경의를 표했다. 김정은 화환이 놓여졌습니다. 추모식에서 진용춘은 눈물을 흘렸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중요보조상들

김정은팀에는 리영호, 최장수 등 김정일 시대의 '청년 간부들'도 있다. 노동당 내 요직을 맡고 있는 룡해와 문경덕 등. 국가정보원은 리잉호 대표를 필두로 하는 50~60대 조선인민군 고위간부들이 점차 중심무대를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인 리영호는 조선인민군 역사상 최연소 2인자이다. 1942년에 태어난 그와 장성택은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이었고, 이후 군사작전장교로서 요직을 맡았다. 외신들은 리잉하오가 포병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2010년 1월 북한 해안포병부대가 서해안에서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인 것도 그의 지휘하에 있었다. 남조선에서는 강인한 문체와 맹렬한 수사를 지닌 리잉호를 인민군의 '철주먹'이라 부를 수 있다.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는 리영호와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일부 평론가는 “이전에는 없던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를 만들어 김정은과 리영호가 함께 두는 것은 리영호가 기반을 다져주길 바라는 김정일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노동당과 군을 위해, 군에 기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한국이 김정은의 '중요한 보좌관'으로 여기는 최룡해. ,”는 주로 김정은의 당 업무를 보좌하는 일을 담당한다. 최룡해는 1949년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동지이자 전 인민무력상이었던 최현이어서 김정일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2010년 조선로동당 대회에 앞서 최룡해강은 당대회에서 장군급을 수여받고 정치국 후보위원, 비서비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남한 언론은 최룡해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상 후보로 추측하고 있다.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는 군, 내각, 사회단체 간부 임명을 총괄하며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이다. 즉, 최룡해는 김정은의 당사무 처리에 있어 중요한 보좌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의지가 기대되는 인물 중 하나는 평양시 노동당 책임비서 문경덕이다. 일부 보도에서는 1957년생 문경덕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육성으로 재취업이 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경덕의 경력은 장성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9년 장성택이 국방위에 들어가면서 문경덕은 조선로동당 내정부 부부장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2010년 6월 북한 국무총리로 승진한 최용린의 뒤를 이어 평양시당위원회 비서가 됐다. 문경덕은 오랫동안 경제사업에 주력해 왔으며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국가의 문'을 열겠다는 구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 '경비대'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 외에도 북한의 당, 군, 정부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있다. 점차 김정은의 강력한 지지자들이 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당과 정부 간부들의 자녀로, 모두 30~40대 '비콘그룹'으로 불린다. 잘 알려진 대표로는 오계열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둘째 아들 오세현 씨, 강석주 북한 부총리의 장남 강태성 씨 등이 있다. 그리고 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인민군 총정치국 국장을 지낸 자오명록의 둘째 아들 자오성호(趙聖湖).

'봉화그룹'이라는 이름은 김정일 할머니 강판석 가족이 살았던 평양시 강동군 봉화리 일대에서 따온 것으로 강판석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판석. '비콘그룹' 구성원 대부분은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 북한 명문대학에서 수학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비콘팀' 멤버들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로동당 군사위 부위원장을 지낸 후 점차 '봉대군'의 젊은 장성들과 간부들을 대거 군부, 정부 부문으로 승격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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