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판다를 빌리는 것은 막대한 임대료 수입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관련 지도자들의 일련의 해외 유학 기회를 의미한다. 이는 1960 년대 중반 중국이 부러워하는 일이다. 판다 임대의 장점을 보고 국내 각종 판다를 사육하는 기관들은 모두 자신의 판다를 홍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편 중미 관계 온난화와 미국의 판다 열풍으로 3 ~ 2 개월 만에 미국 동물원은 수천만 달러의 거액의 입장권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 경제적 이익 외에도 정치적 요인이 팬더 임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뉴욕을 포함한 일부 미국 대도시들은 이미 정부 자원을 이용하여 동물원이 중국에서 판다를 빌려 전시회를 하도록 격려하거나 도왔다. 여러 가지 요인의 영향으로 판다 임대의 대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뜨거워졌다. 1984 부터 1988 까지 4 년 동안 북미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산티아고, 토론토, 시애틀, 포틀랜드, 애틀랜타, 케이지리, 멤피스, 콜럼버스,;
중국에서는 최초의 판다임대가 중국동물원협회가 운영해 판다를 제공하는 동물원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면서 자연보호구역과 야생 동물 관리 권한을 가진 임업부에 부러움을 샀다. 후자는 곧 판다임대에 가입하여 중국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판다생육기지를 이용해 해외로 판다를 운반하고 때로는 야생판다를 직접 잡아 임대를 하기도 했다. 중국 전체 업무의 관리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두 시스템이 판다를 동시에 임대했기 때문에 임대 거래로 인해 얼마나 많은 판다가 잡히고 수출되었는지를 정확히 집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인공사육하는 판다는 각기 다른 기관에 속해 있어 정보가 잘 소통되지 않고 혈연 관계가 불분명하다. 모든 생육기관에는 독거판다가 있다.